백제의 숨결을 따라서, 5대에 걸친 64년 백제의 도읍지 공주 공산성
공주시 산성동에 위치한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시절부터 성왕 시절까지 5대에 걸쳐 64년 동안 백제의 수도 역할을 했던 수도성입니다. 공산성의 형태는 산성으로 앞에 금강이 흐르는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한 천애의 요새입니다. 동서로는 약 800m 정도의 길이이고, 남북으로는 400m 정도의 길이를 이루는 자연 성입니다.
성 안에는 웅진 도읍 시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때 연못 2개, 고려시대 때 세워진 영은사, 조선시대 때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와서 생활했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가 아직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절경을 품고 있는 공산성은 오늘날 가족 단위, 부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공산성의 유래
공산성의 원래 이름은 백제 시대 때 축성되었기 때문에 웅진성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부터는 오늘날의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백제의 궁성으로서 역할을 했던 공산성, 백제의 혼과 숨결이 한껏 느껴지는 듯 합니다.
한때 한나라의 수도,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시는 잠시 충청남도 도청소재지로서 그 기능을 하다가 지금은 매우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소도시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주시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강을 건너야 하는데, 아름다운 금강교를 마주하며 공산성을 바라보면 큰 설레임과 기대를 한몸에 느낄 수 있습니다.
역사 속으로
공산성은 백제의 왕도로서 수도를 부여(사비)로 옮기기 전까지 약 64년 동안 백제의 수도로서 그 역할을 했습니다. 공산성이 백제의 도읍지로서 수도성이 된 계기는 고구려 남진정책의 영향으로 장수왕이 이끄는 3만명의 고구려군이 백제로 물밀듯이 내려오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백제의 개로왕이 살해되는 비극까지 경험하며 한성을 내주고 남쪽으로 계속 쫓기던 백제는 공산성에 도읍을 정하고 문주왕이 백제 중흥의 야망을 키우면서 그 역사를 새로이 시작했습니다.
후에 백제가 멸망하고 잠시 의자왕이 거처하기도 했던 공산성은 나중에 나당연합군에 맞서 대항하는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였고, 또 조선시대 때는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가 피난와 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공산성에는 암문, 치성, 장대, 수구문, 고대 등의 방어시설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성 내부에는 백제시대 때 건축되었던 왕궁터를 비롯하여 영동루, 진남루, 금서루, 공북로, 쌍수정, 쌍수정 사적비, 영은사, 명국삼장비, 연지, 임류각지, 임류각 등 백제시대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의 기와와 토기 등의 유물들이 아직까지도 계속 출토되고 있습니다.
- 통일신라 때는 김헌창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던 공산성은 조선 후기 때에는 충청감영이 설치되기도 하는 등 지방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공주시 금강철교
공주시 금강철교는 서울에서 목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다리로, 1932년도에 착공하여 1933년에 준공한 철교입니다. 철교가 완성되기 전에는 배를 이용하여 이곳을 왕래하였으며, 충청남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철교가 완성되었습니다.
1933년 준공 당시 금강철교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고, 당시로서는 교량 건성의 새로운 장을 연 매우 의미있는 곳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에 현재는 교량사적 가치와 조형적 요소의 가치가 높이 인정되어 교량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금강철교는 6.25전쟁 당시 미국의 제24사단 34연대가 금강교를 폭파함으로써 14일까지 북한군의 진출을 방어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에 금강교는 1933년 11월에 개통되어 6.25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1956년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공산성 깃발이야기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입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신의 개념이나 형상이 표현된 것은 삼국시대에 중국 문화의 전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송산리 6호분 벽화의 사신도는 당시 왕성했던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국제교류를 보여줍니다.
깃발의 바탕색은 황색입니다. 이것은 백제의 나라색이며 백제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생각하여 중요히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깃발의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을 반영한 것입니다. 깃발의 배치는 송산리 6호분에 그려진 사신도의 위치를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를 각각 배치하였습니다.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금서루는 공산성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문루입니다. 성안으로 이러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가,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 등의 문헌 기록과 동문 조사 자료 및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습니다.
현재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문루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우리나라에는 총 12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 역사 유적지구,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조성왕릉,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바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있는 백제 관련 역사유적지구이며,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총 8개의 유적을 포함한 연속유산으로 공주시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시에 2곳(왕궁리 유적, 미륵사지)이 있습니다.
공산성 꼭대기에 앉아 아름다운 금강 바라보며.
유유히 아름답게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덧, 공주 공산성을 눈 앞에 담게 됩니다. 금강의 포근한 분위기에 젖어 공산성에 올라 그 풍경을 마주하며 한껏 모처럼의 여류로움에 흠뻑 취해 봅니다.
오늘도 저의 스몰여행이 제게 많은 가르침과 즐거움, 행복을 줍니다. 다음 스몰여행을 또 기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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